주한 러시아연방 대사관

알렉산더 띠모닌 공사 부대사

한국 외국어대학교 강의

 

(20070326)

 

러한 학자의 양국 역사에 대한 견해 차이 극복의 중요성에 대하여

존경하는 여러분!

러시아의 언어, 문화, 역사, 정치와 경제를 연구한는 교수, 연구원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있도록 초청해 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지도부에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러시아의 대아시아 정책에 있어 대한민국과의 협력을 모든 분야에서 강화하는 것은 우선 순위를 차지합니다.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깊은 역사적 뿔이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부터 민족의 운명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다. 양국 국민은 극심한 사회 혼란, 기아, 빈곤, 유혈전쟁 많은 닮은꼴의 시련을겪었고, 사실상 시련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다시 일궈야 했습니다.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 두 나라는 수많은 공동의 문제들을 함께 풀어나가야만 합니다. 현재는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자신 있게 상호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되고 있습니다. 과정의 결과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양측 상호 적용이 높은 수준에 도달할수록 우리가 견해 차이가 있는 문제를 포함하여 우리 협조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쟁점을 더욱더 솔직하고 신뢰성이 있게 논의할 있게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교활동 외에 30 이상 한국역사를 연구해 왔는데 오늘 강의에서 러시아의 한국학 학자와 한국의 러시아학 학자의 관심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것은 바로 러시아와 한국 역사, 그리고 러한 관계 역사 일부 사건에 대한 양국 학계 사관에 있어 아직 남아 있는 차이입니다.    

문제는 순수한 학문적 토론의 한계를 넘었고 러한 양국에서 서러 객관적이고 호의적인 이미지가 형성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봅니다.

특히 2004 2 인천에서 러시아 순양함 바략 (Âàðÿã) 호의 영웅적 항거 100 주년 추모행사와 러시아 전사자 추모비 계막식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복잡한 대응을 보면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중요한 행사는 러한 관계의 높은 수준을 과시했을 아니라 대한민국 지도부와 관계자들이 러시아 전통을 존경하고 자국을 위해 삶을 희생한 전사들의 추모의 중요성을 이해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한민족에 있어서도 대표적인 특성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 선원 추모비 설립을 반대하는 시위도 버려졌고 일부 한국 신문에는 20세기 초의 러시아 극동지역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사실은 백년 전에 외국 학자들이 강요한 «러시아 위협론» 한국 사회에 얼마나 깊이 남아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러시아 위협론» 따르면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가장 침략직인 계획을 가진 국가이었습니다. 과거에 일부 일본과 미국 정치가들이 한반도에 대한 자국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학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봅니다. 

한국과 구소련이 오랫동안 교류가 없어 대한민국 학자들은 일본과 미국 출판물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남한에서 구소련의 정책 역사에 대한 관측도 일면적이었고 주로 부정적일 밖에 없었다. 1990 러한 수교 전에 이러한 연구 분위기는 남한 국민 중에서 러시아의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1990 후에는 러시아와 한국 상호 정치와 역사 연구 조건은 향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러한 학자들이 자유럽게 만나고 다양한 논쟁점을 논의하고, 양국 도서관 기록 보관서에 일을 하면서 우리 양국 공동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최근 16 동안 러시아와 한국의 역사, 그리고 러한관계사의 많은 사건과 사실에 대한 훨씬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그리고 사상해제된 정보를 제공하는 적지 않은 저서와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서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언어학 문학 분야에서 새로운 훌륭한 전문가의 세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강의실에도 세대를 대표하는 많은 학자들이 있습니다.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국민의 러시아와 러한관계에 대한 인식과 우리 양국관계의 미래가  여러분의 러시아와 러한관계에 관한 연구 성과에 달려 있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자 합니다. 때문에 러한 학자들이 분야에 앞으로 일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적한 최근 긍정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는 한러 학자들도 인정하는 대로 심한 견해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특히 양국에서 발행되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교과서에는 그런 차이가 많습니다. 최근에 한러 전문가들은 역사의 객관적인 서술의 문제를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측에서는 러시아 과학원 동양학 연구소와 극동문제 연구소와 한국측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과 정신문화연구원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은 70년대 부터 시작된 한국바로알리기 프로젝트 안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2004 러시아 과학원 극동문제 연구소에서 개최된 학술 회의에서 발표된 한국개발원을 대표하는 신혜숙 박사의 보고서를 주의 깊게 읽어 봤습니다. 발표문은 1989 이후 러시아에서 발행된 새로운 교과서에서의 한국에 관한 내용을 분석하는 최초의 남한 논문입니다. 이제 한국 학자가 하는 평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신혜숙 박사에 의하면 «한러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하여 한국에서 러시아에 대하여, 러시아에서 한국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한 일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다음에 신혜숙 박사는 최근에 한국에 관한 러시아 교과서 내용은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가는 반면 한국 교과서의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나 내용은 냉전시대에 비교할 변화가 없는 실정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신혜숙 박사는 이러한 교육은 중고등학생들에 영향을 끼치고 양국 협력에도 손상을 끼치질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것은 무시할 없는 중요한 결론입니다.

신혜숙 박사는 러시아 교과서의 개선을 인정하면서도 양국 학자 간에 심한 견해차이가 있는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1.                    1904-1905 러일전쟁. 남한 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러시아 자료의 대부부는 전쟁 도발 이유에 대하여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 없고 러시아가 만주와 한국에서 자국 지위를 강화하도록 노력한 것에 대하여 언급이 없습니다.

2.                    한국의 분단. 신혜숙 박사는 러시아 교과서에서 한국 분단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회피하며 분단의 주도세력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답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3.                    1950-1953 한국전쟁. 러시아 교과서에서는 전쟁을 범세계적인 입장에서만 보며, 세계체제의 충돌이라고 평가함으로써이 비극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관점을 무시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측의 불만을 일으키는 러시아 학자 사관의 특징을 지적한 신혜숙 박사는 러시아가 한국 분단과 한국전쟁 도발에 대한 책임 인정하는 것이 러시아 교과서 개선 사업의 목적중에 하나임을 강조합니다. 신혜숙 박사에 의하면 것은 한국에서 깊이 자리 잡은 부정적 러시아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중요한 조건중에 하나입니다.

러시아 한국학 학자들은 남한 동료의 관점을 중요시하며 존경하는 것을 별도로 지적해야 됩니다. 우리 학자들은 구소련에서 한국역사 서술에 대한 한국측 일부 불만의 정당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한 학자들도 새로운 러시아의 교과서를 소련 시대 교과서와 동일시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러시아 한국학은 가치관 재편성 과정 중입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의 해방, 분단, 육이오 전쟁 전쟁후의 남북한의 발전 문제를 포함한 많은 복잡한 근대사 문제에 대한 우리 사관이 재평가 중입니다. 최근 몇년 동안 러시아에서 많은 쟁점에 대한 원칙적으로 새로운 접근이 있는 서로 다른 «한국사» 권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특히 강조할 만한 것은 한국사 서술에 수정을 의지가 있는 우리 학자들은 남한 저자들이 러시아사, 러한관계사의 일부 문제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호의적인 태도의 필요성 문제를 제기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한국학 학자들은 남한 동료의 연구 성과를 주의 깊게 검토하는데 일부의 사실과 사건에 대하여 편견적인 평가를 지적합니다.

특히 19세기 20세기초의 러한관계에 대한 양국 학계의 입장이 모순된다고 지적합니다. 시기를 깊이 연구해 러시아 학자들은 하남대학교  이찬춘 교수를 비롯한 일부의 한국 연구자들이 한반도에 대한 때의 러시아와 일본의 정책을 동일시키는 판단에 동의할 없습니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먼저 한국을 보호국으로 다음에 30년간 식민지 통치를 실시한 일본을 러시아에 비교한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론 러시아가 한국 국민을 돕기 위해서 일본에 대립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없습니다. 러시아의 정책은 그야말로 냉정한 타산에 기초했습니다. 시기에 러시아의 전략적 목적은 한국에서 적대국가 입장 강화의 방지이었다.  유감하게도 러시아의 러일전쟁에서의 완패는 한국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시기의 상황에 대한 가장 철저하고 객관적인 연구의 예로는 남한 박정효 교수의 저서인 «러시아와 한국. 1895-1898», «1904-1905 러일전쟁» 수가 있습니다. 저서들은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어로 출판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유감하게도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일부의 한국 역사학자들이 러시아가 원래부터 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위협했다는 «위협론» 아직도 지키는 사실은 러시아 학계를 대단하게 놀라게 합니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러한 관측에 절대로 동의할 없습니다.

유감하게도 양국 학계의 견해차이는 남한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2006 출판된  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교육인적자원부가 위탁한 오창훈, 장종근, 장두호, 박찬석 저자의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예로 있습니다. 교과서를 검토한 러시아 학자의 검토에 의하면 러시아의 내부적 발전에 관한 편에서 유럽에 비하여 우리 나라의 후진성과 러시아의 역사적 발전 진로의 무능함이 강조됩니다. 교과서에는 노르만족이 «노브고로드 공국과 키예프 공국을 세워 러시아의 기원을 이뤘다» 이른바 노르만 학설 아무 설명이나 감정 없이 그대로 인용됩니다. 한편 같은 페이지에서 영국에 관해서는 노르만족이 «왕조를 이뤘다»   정확한 표현이 이용되는 것이 지적할 만합니다. 이반 3 (Èâàí III) 통치시대와 관련하여 그는 «스스로를 차르(öàðü) 일컬으며서 멸망한 비잔티움(Âèçàíòèÿ) 황제의 계승자로 자처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모크스바 공국과 비잔티움 제국 왕조의 혼인관계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스크바측이 아무 근거 없이 그러한 주장을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표트르 대제 이후의 러시아사 서술에서 역시 러시아의 후진성이 강조되며 주요의 내용은 러시아 농노제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농노 해방 이후의 발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만 나오고 볼셰비키 혁명 직전의 러시아가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발달이 가장 뒤처진» 나라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역사 전체에는 20세기 80-90년대의 변화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정치적 갈등, «러시아 연방에 속해 있는 체첸 주변 공화국의 분리 독립 운동 등의 불안 요소들이»  강조됩니다.

19 세기 러시아의 대외정책에 대한 서술에서 가지의 안타까운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웃나라에 대한 러시아의 칩략성 전제입니다. 갈등이나 충돌이 있었을때 마다 러시아는 무조건 도발자로 인식됩니다. 예를 들면 폴란드 분할 점령이 언급되지만 러시아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달리 역사적으로 러시아 공후들이 지배했던 영토만 수복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크림 전쟁의 유일한 도발자로 서술는데 «오스만 제국과 크림 전쟁을 벌였으나 패해하였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사르디니아 나라의 결정적 참전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니라 오스만 제국 역사에 관련되 편에서 «개혁 정치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는데 러시아를 터키 휴진성까지 책임을 취게 하는 것이다.  1939 폴란드에 속해 있던 서부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의 소련에 합병도 폴란드에 대한 침략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 역사에 있어서의 러시아의 역할을 고려할 때는 한반도 영향권에 대한 강대국들의 대립만 중요시됩니다. 그리고 1896 이른바 아관파천 사건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라고 없습니다. 러시아,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일본을 견제하려던 명성황후 시해 사건 고종왕은 사실상 친일파의 포로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신변위협까지 느끼게 상황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고 친러파를 이용하면서 일본의 패권을 일시적으로 견제할 있었다. 러시아 학자들은 그때의 조선왕조와 러시아 간의 긴밀한 관계는 조선의 독립 상실을 진연뿐 아니라 조선의 지도자의 고종왕의 개인적 안전 보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에서 조선은 «아관파천으로 국가의 자주성을 손상되었다» 하고 러시아에 역할은 고종왕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조선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영향권을 장악하려는 데에만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 교과서에는 한반도 해방에 있어서의 소련군의 역할이 언급되지 않고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미군과 소련군이 38도선 이남과 이북에 진주하였다» 서술만 나옵니다.

한국의 해방과 다음의 나라의 분단의 평가는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 하나입니다. 러시아 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극동에서의 2 대전 승리에 있어서의 소련의 역할을 과대평가할 필요성이 없지만 과소평가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본 육군의 주요 병력을 이루던 광동군은 중국 동북부에 주둔해 있었고 1945 8월에 소련군이 군대를 싸우게 사실을 이저서는 안됩니다. 미군은 전투가 끝난 한반도에 진주했으며 한반도 해방을 위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한편 소련군이 한반도 해방을 위한 전투에서 사상자의 수는 2천명이었습니다. 이것을 이저 버리면 안됩니다.

오늘 제가 발표한 내용은 러시아와 한국 역사, 러한관계사에 대한 실지가 있고 객관적인 사관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나라 정치가와 학자들이 해야 광범위하고 중요한 사업의 일부분뿐입니다. 이러한 사업은 다수의 학술회의와 세미나에서 벌써 추진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상호 고립된 양국에 있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극복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벌써 시작된 러한 학계 간의 의견 교환은 역사를 사실대로 배우고 양측의 입장과 근거를 염두에 두며 러한 국민간의 상호이해와 신뢰성의 강화에 기여하는 역사 연구논문과 교과서를 마련할 상호 의지를 증명합니다.